공포

 

존경하는 슈타인박사님께

 어제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너무 언짢게 생각지 마십시오.
왜그랬는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 여름이라는 계절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이 풍요와 포만상태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금자연은 아무런 그리움도 없는 정지된 상태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아주 피로하고 허전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 매우 무가치한 인간으로 여겨집니다. 가끔 나는 모든것이 텅 비고 회색인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럴때마다 나는 공포를 느낍니다. 삶에대한 공포, 오늘도 살아야만 하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말입니다. 그럴때면 어떤 위대한 것에 대한 상념도, 신에대한 생각까지도 나에겐 아무런 도음이 되지 않습니다.
이 공포와 더불어 사람은 완전히 혼자인 것입니다.

 공포의 가장 무서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고 애를 써봅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가지 대답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내가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리라는 것, 무언가 나의 존재가치를 느낄 만한 훌륭한것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내 삶이 간단히 소멸되어버리고, 참되게 살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입니다. 또는 내가 어떤 잘못을 범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의 발전은 영원히 좁은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판결이 내릴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내부에서 무슨 훌륭한 것이 나오겠습니까! 이게 무슨 교만입니까!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만은 말하겠습니다. 나의 내부에 무언가가 있어 내게 말해줍니다. ㅡ 너는 그것에 도달하리라ㅡ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만 불안의 언저리에 불과합니다.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은 그 언저리에 불과하며, 그 본질은 도저히 포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칠 것만 같은 것은, 내가 이 상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열정적으로 거기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발작이 참을 수 있는 최극단의 한계에 이르지 않으면 나는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그런 극단을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기묘한 결단성을 느낍니다. 나의 어머니는 언젠가 한번 나에게 미쳤다고 말씀하신 일이 있는데, 나는 가끔 나에게 그렇게 될 소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도 공포를 갖고 있습니다. 어제 그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했습니다. 얼마동안 나는 당신을 찾아가지않겠습니다.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기 때문 입니다.

당신의 N


 -니나, 생의한가운데, 루이제린저


'아아 나는 장미꽃속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
-생떽쥐베리
ㅜㅜ

오늘 잠자다가 화들짝 놀라 깻다. 이 편지가 생각났다.

by iraiza | 2008/03/23 21:2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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